고민하는 힘 독서일기

고민하는힘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었습니다.
둘다 아주 빨리 읽을 수는 없는 책이라서 머리가 맑을때만 (아침에 아주 잠시잠깐) 읽었더니 상당히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것, 열심히 문장 고쳐가면서 써내려간 책에 대한 예의이죠.


그는 막스베버와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저작들을 인용해서 어린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겸손하게 합니다.
인터넷 허섭기사와 블로그의 1분 에세이같은 글에 익숙해진 내게 고수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알라딘에 들어가보니 신문들의 서평이 있네요. 제 생각과 비슷한 글이 있어 인용합니다.

자신의 키에 맞는 자기다운 인생을 살고 나름대로의 고민을 거듭한다.
이 책은 이 한 마디로 집약된다.
자신의 키를 찾아낼 곳은게임과 같이 혼자만 잘난 세계도 가상현실도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사회다.
- 「니혼게이자이 신문」


로쟈의 인문학 서재도 띠엄띠엄 잘 모르는 주제를 넘어가면서 읽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방면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글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겐 지젝이라는 생경한 철학자를 그래도 이름이라도 들어보게 해준 로자, 이런 사람이 있고 책을 낸다는 것이 기쁩니다.
로쟈의 저공비행 이리로 들어가시면 블로그 나옵니다.

아래는 출판사 책소개에 들어있는 로쟈님의 글의 일부입니다
“뜻하지 않게 ‘대표적인 인터넷 서평꾼’에다가 ‘인문학 블로거’ 행세를 하게 된 건 내가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내놓고 활동하는 이들이 적어서다. 나는 하녀고 광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않는다. 나는 다만 읽고 쓰고 떠들겠다. 뭔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세상이 될지 모른다는막연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견딜 만한 세상이 될지도.

이 책들의 생각하는 저자들은 약간 처량해 보입니다.
고민이나 생각은 사람을 산뜻하게 하지는 못하니까요. 샤방한 고민이란건 이미 가볍습니다.

그러나 깊이 고민하는 힘은 있는 것이겠죠.
가벼움과 즉각반응이 이제 트랜드를 지나 삶의 필수요소가 되어버린 지금, 고민과 철학은 그 희소함으로도 가치가 충분합니다.

덧글

  • 흰짱구 2009/08/03 14:40 # 답글

    어찌됐건 나쓰메 소세키를 읽어봐야 할것 같습니다. 요즘 이분의 이름을 자주 들었거든요. ^^
  • 지성의 전당 2019/01/15 21:36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민하는 힘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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